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랑스 식민제국 (문단 편집) == 프랑스 제2식민제국(1830년 ~ 1980년) == [[나폴레옹 전쟁]] 이후 프랑스는 다시 한 번 식민지 확장에 나섰다. 1830년 [[샤를 10세]]의 [[알제리]] 침략과 선교사 보호를 명분삼은 베트남 개입을 시작으로 [[나폴레옹 3세]] 때에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는데 남태평양의 누벨칼레도니와 폴리네시아를 확보하고(1853) 베트남 남부의 [[코친차이나]]를 확보하였다(1862). 2차 아편전쟁과 태평천국 운동에 개입한 것도, [[병인양요]](1866)도 이때의 일이다. 본격적인 시작이 나폴레옹 3세 때였다면 가장 왕성한 확장은 제3공화국 때였다. 당시 프랑스의 본토 인구는 1870년에 38,400,000명이었고 1910년에 41,500,000명이었기 때문에 개척에 나서기에도 충분했고 원래부터 해외로 투입할 수 있는 능력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. 유럽 열강들이 지들 딴에는 신세계인 아프리카로 달려들 때 프랑스도 역시 달려들었으며 1884년 [[베를린 회담]]을 기점으로 아프리카 내륙을 향해 쭉쭉 뻗어나갔고 코친차이나를 넘어서 [[메콩 강]] 동쪽의 인도차이나 반도 동부 전체를 확보하였다.([[프랑스령 인도차이나]]) 그렇게 프랑스는 다시 [[해가 지지 않는 나라]]로 복귀했다. 다만 이때의 식민제국은 영국과 경쟁하지 않고 협력하며 빈자리를 나눠먹는 게 특징이다. 또한 영국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식민지로의 대규모 인력투입은 비교적 적은 편이었는데 이는 프랑스 본토의 인구증가가 정체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식민지 개척에 투입할 인력이 적었기 때문이었다. [[서아프리카]]와 [[지부티]]에서 점차 파고들어간 횡단정책이 시행되었다. 이것이 영국의 종단정책과 부딪혀 [[1898년]] 오늘날의 [[남수단]]에서 벌어진 [[파쇼다 사건]]도 정치적 및 군사적 상황에서 불리했던 프랑스가 양보해 쉽게 해결되면서 영국의 종단정책을 인정하는 대신 [[서아프리카]]의 점유를 인정받았으며,([[프랑스령 서아프리카]]) [[태국]]은 영국령 미얀마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사이의 [[완충국]]이 되었으며, [[제2차 아편전쟁]], [[태평천국 운동]], [[크림전쟁]]과 [[의화단 운동]], [[수에즈 운하]]의 건설의 경우 함께 개입하였다. [[중동]]에서도 [[오스만 제국]]의 붕괴 뒤 영국과 함께 "사이크스-피코 조약(Sykes-Picot Agreement)"으로 대(大)시리아[* 오스만령 [[아랍]]: 현재의 시리아, [[팔레스타인]], [[이라크]], 요르단, 레바논을 합친 지역. "레반트"라고도 한다.]를 나눠먹어 [[레바논]]과 [[시리아]]를 차지했다.([[시리아-레바논]] 위임통치령)[* 영국의 벨푸어 ~~삼중~~ 선언에 가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사이크스-피코 밀약 역시, 오스만 격퇴에 공을 세운 [[하심 가문]]과 아랍반란군의 의사를 무시하고, 현대까지 이어지는 국경선을 당시 입맛대로 확정했다는 면에서 계속 비판받고 있다. 참고로 이 영프간 밀약을 폭로한건 다름아닌 소련이었고 양측은 굉장히 당황했다고 한다(...)] 결국 이런 프랑스의 [[제국주의]]도 [[제2차 세계 대전]]과 [[비시 프랑스]]의 성립과 함께 망해가기 시작했다. 식민지는 [[자유 프랑스]]와 [[비시 프랑스]]로 갈라졌고, [[인도차이나]]는 [[일본 제국]]의 [[태평양 전쟁|침략]]이 이뤄졌다. 전쟁을 끝낸 시점에서 인도차이나는 [[호치민]]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세력이 장악하여 사실상 독립한 상황이었다. 상황이 이런데도 큰 유혈사태 없이 1947년경부터 순순히 식민지를 포기한 영국과 달리 프랑스는 1950~60년대까지 식민지를 유지하려 발악을 했지만 2차대전으로 전 국토가 쑥대밭이 되다시피 한 프랑스에게 식민지를 유지할 국력은 남아있지 않았다. 그 과정에서 마다가스카르와 알제리 그리고 인도차이나 등에서 식민지인들을 탄압 및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. 결국 베트남에서는 월맹과의 [[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|전쟁]]에서 패배하여 강대국이라는 프랑스군이 월맹군에게 패전하여 포로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이며 세계적인 굴욕을 겪게 되었고, [[알제리]]와의 [[알제리 전쟁|전쟁]]에서도 부질없이 질질 끌면서 피해가 커지며 굴욕을 연속으로 겪게 되었다. [[이집트]]에서는 수에즈 운하의 권리를 둘러싸고 영국, 이스라엘과 합작해 [[제2차 중동전쟁]]을 일으켰지만, 영국과 힘을 합쳤음에도 미국과 소련의 압박에 꼬리를 내려, 결국 2차대전 이후 세계 질서의 헤게모니가 미국과 소련에게 넘어갔다는 사실만 재확인했을 뿐이었다.[*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나세르의 정치공세로 미국과 소련이 압력을 넣어 수에즈 운하는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.] [[냉전]] 구도에서 프랑스는 더 이상 주연이 아닌 조연이었고, 이후 [[1960년대]] [[샤를 드 골]]이 대통령 자리에 올라 대부분의 식민지들을 독립시키면서 프랑스 식민제국은 1980년 [[바누아투]]의 독립을 마지막으로 끝을 맞이했다. 이후 독립하지 않고 프랑스에 잔류한 식민지들은 프랑스의 해외 영토가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